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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이 다른 사람 이중성을 지닌 이중적인 인간 같이 살아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인생의교과서

by 힘들때전화해 2023. 8. 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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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 연애사는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이상은, 제삼자가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사'의 경우는 정말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쉬쉬했던 것인데 사회적 문제가 확실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은 이제 끔찍한 사태가 이미 일어난 뒤이다. 대표적으로 가정폭력이다. 근데 이 폭력에도 법적으로 속하지 않고 남들이 발견하기도 힘들고 그저 가정 내부에서만 끙끙 앓고 홧병은 기본에 아예 자포자기가 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과 사는 것이다.

물론 가정에 한정되진 않는다. 하지만 이글에서는 '가정'을 대표 명사로 두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가족이란 게 참 의미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매우' 있다고 느낀다. 물론 아직은 아니, '아직도 이르다.' 가족과 관련되어서는 어려움이 너무 많다.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영역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재정립을 위해 연구하고 추친할 필요성이 분명하게 있다.

'가정 범죄', '가정 문제'가 사실 제일 크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숨어있는 범죄와 폭력과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곧 사회 문제가 된다고 본다.

 

 

 

- 이중성

하나의 개체에 서로 다른 성질의 두 가지가 겹쳐있는 것을 말한다. 이를 인간에 대입하면 사람이 일관되지 못하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시를 들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있다. 좀 더 생활적으로 들어가면 '안과 밖이 다른 사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 가까이서 보지 않는 이상,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것.

이중적인 인간에 대해 이해는 해도, 진짜로 이중적인 사람과 가까이 오래 살아보지 않으면 이러한 이중적인 사람의 특징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왜냐면 그만큼 방어적이고 복잡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데 절대로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견고한 본인만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무엇을 생각하든 당신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심지어 '남들은 캐치하기도 힘들다.' 밖에서는 하하호호 인상 좋고 인자하고 점잖고 좋은 사람으로만 인식된다. 최소 '순한 사람,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집에 오면 폭군이 된다. 폭군도 여러 유형이 있다. 발현이 이제 가정폭력일 수도 있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참고로 이중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사람이 일관적이지 못할 때 어떤가? 스트레스받는다. 이중적인 사람은 매번 새로운 잣대,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에 인간 자체가 인간미가 떨어지고 매번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에 주관이란 게 없어 매번 스트레스받으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걸 타인의 입장에서는 발견하지 못한다.

물론 개중에는 사람 파악 능력이 뛰어나거나 느끼는 것이 예민하거나 본인도 깊이 경험해 봐서 '알아채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중적인 사람을 좋은 사람 취급해도 본인 눈에는 그게 보여서 아예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다.

 

 

- 사람이라면 인간적으로 기피하는 유형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표적인 유형 중에는 '이중성'이 있다. 이중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 생각해 보자. 계속해서 봐야 하고 계속해서 그 말을 들어야 하고 남들은 그저 좋은 사람으로 보고 집에서는 왕으로 군림하고... 상상 이상으로 '정신 나간다.' 심지어 이중적인 사람은, 자신이 대해는 각각 사람마다 또 '각각 다르게 대하는 게 심하다.' 해서 남들이 알 수가 없다.

본인은 원칙적인 사람이라고 매번 주장하고 모든 법규를 잘 지키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라 자신한다. 근데 알고 보면 탈세도 하고 원칙이란 게 없이 그냥 자기가 좋으면 좋고 싫으면 어떻게든 까내리고 자신은 우직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요행 없이 정석으로 간다고 하는데 가족들이 보기엔 완전 팔랑귀여서 다단계도 빠지고 이것저것 구입도 하고 보험 계약하고... 이런 사람과 평생을 산다는 것, 느낌이 오는가? 안 올 것이다.

 

 

-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 자체가 안 되는 유형

이중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미지를 씌우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볼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표현하자면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그게 너무 잘 보인다.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른 것이 너무 잘 보인다. 솔직히 병원 치료가 필요하다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게 너무 잘 보인다. 말을 할 때 천천히, 하지만 또박또박 설교하듯이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아주 점잖고 인자한 말투로 말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좀 고지식해 보이긴 해도 사람은 착하거나 정직하게 보일 것이다.

그냥 이 말투와 행동 자체가 다르다. 환하게 잘 웃는데 화가 나면 거의 살인마 같이 보일 정도이다. 상상이 될까? 주변에 아주 환하게 웃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그 사람이 이제 자신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화가 났을 때 마치 뉴스에 나오는 흉악 범죄자들의 눈빛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것은 예시이다. 환하게 웃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얘기가 절대로 아니니 오해 없도록 하자.

 

 

- 곁에 있으면 불안감이 상승한다

이걸 보통 사람들이 캐치를 할 수 있겠는가? 못한다. 그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평생을 그 긴장감 속에 산다.' 사람이 불안감이 높으면 극단적으로 말해 정신병이 걸리거나 죽는다. 그 불안감이 항시 높아진 상태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과 '결혼한 사람은?' 마침 또 대응조차 잘 못하는 순하거나 약한 사람이라면?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아는가? 이러한 이중적인 사람은 본인보다 약한 사람을 잘 파악한다. 그래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정확히는 본능적으로 느낀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가스라이팅? 이중적인 사람이 그냥 최고라고 보면 된다. 물론 강자는 건들지 않는다. 자신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지 않는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고 그것을 매우 진중하고 정적으로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보면은 강자한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한테는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그런 말이 있다. "착하게 말하는 강압".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모른다. 되려 괴롭힘 당하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도 한다. 밖에서 보기엔 그런 뉘앙스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아직은 사회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수 없다. 세대교체만이 답이고 점점 더 오픈마인드의 사회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중적인 사람도 이제 나이가 들고 시간이 다 지나면? 달라질 것 같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바뀐 게 아니라 '이중성에 도가 튼 것이다.' 너무 숙련되어서 이제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이 된 것이지, 이 특징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을 가도 바뀌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받아들여줄 뿐이다. 이 끔찍함을 아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답은 본인이 '잘 되는 것' 뿐이다. 잘되어서 그 사람과 완전하게 독립하여 관계는 유지하지만 그 이상 가까이는 지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가족의 경우 인연을 끊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대부분은 받아들이고 그냥 다 잊고 하하호호 좋게 지내는 걸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지만, '언제고 해가 된다.' 사람, 바뀌지 않는다. 표면적인 개선은 가능하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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