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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많은 사람 특징, 의심은 나를 병들게 하기 때문에 고쳐야만 한다.

에세이essay

by 힘들때전화해 2021. 5. 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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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쉽게 만나게 되는 유형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스스로도 굉장히 고통스럽다. 이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안 좋은 상태가 확실하기 때문에 의심이 많은 사람은 웬만해선 피하는 것이 좋고 스스로가 의심이 많다면 특징을 보고 고쳐보도록 하자.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의심이 많으면 모든 면에서 개선도 쉽지 않다. 그만큼이나 시간도 오래걸리고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사실상 매우 어렵다.

병적인 경우는 치료를 받더라도, 치료까지도 믿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더뎌지거나 치료가 안된다. 그만큼이나 의심병이란 대단히 어려운 증세이다.

 

- 하나의 예시

물건을 도둑맞은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특정 인물을 의심하고 있다. 분명히 그 사람이 훔쳐갔을 것이라는, 나름의 근거도 있다.

이 사람은 그 특정 인물의 말하는 태도나 행동거지가 상당히 불량하다고 느낀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둑맞았다 생각되는 물건을, 자신의 집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후로 의심했던 사람들 다시보니, 말하는 태도나 행동거지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솔직한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의심의 착각이다.

 

- 의심이 많은 사람들의 특징

뜬금없이 화내는 경우가 있다. 화가 많은 게 아니라 조금조금씩 의심하던 것이 폭발한 것이다. 즉, 단순히 화가 나서 화를 낸 게 아니라 어떠한 근거를 대면서 화를 낸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하다 느끼게 되는데 왜 이런 상황이 되느냐면,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한다.

자기 나름으로는 사람의 심리를 잘 알고 감정을 잘 느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의심이 많은 것뿐이다.' 의심은 의심에 의심을 낳는다. 즉,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절대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내리는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지 '자기만의 생각'으로 결론을 내린다. 모든 부분에서 이렇기 때문에 자신의 틀 밖으로 나오질 못한다.

계속해서 자신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사고가 좁다.' 말하자면 사고 자체가 병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수준의 사고가 아니라 사고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물을 볼 때, 객관성을 가지고 파악하는 것이 먼저인데 의심이 많은 사람의 경우는, 객관성을 멀리 모셔두고, '가상의 목표'를 먼저 만든다.

 

말하자면 자신의 망상속의 목표를 정해두고 그 목표에 끼워 맞추려고 노력한다. 즉, 애초부터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것이다.

가상의 목표가 처음부터 정해지고 그 목표에 맞춰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나름은 객관적인 근거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둔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이미 스스로 답을 내려놓고 나만의 근거를 찾기 때문에 그 논리 또한 굉장히 탄탄하다. 해서 남들이 볼 때는 굉장히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허나, 논리가 아니라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혼자만의 망상이다.' 이 틀은 엄청나게 단단해서 사실상 깨지지 않는다. 이런 병든 사고를, 의심이 많은 사람이 갖기 쉽다.

일단 의심부터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심은, 매우 이성적이며 감각적이라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다 보니까 남들과 소통에서 문제가 많다.

물론 사회생활은, 타입에 따라 가능하기도 한데 겉으로만 가능한 것이지, 스스로 굉장히 스트레스 받으면서 참아내고 있는 것뿐이다.

심하면 아예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어 버리는데 이건 사회생활이 가능한 의심병 환자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고립되기 때문에 아예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세상 속에 적응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해서 이런 사람 주변에 있으면 정서적으로 상당히 좋지 못하다.

특징 중에는 '결여된 믿음'이 있는데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할 때, 두 사람 중 한 명만 의심을 해도, 믿음은 깨진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의심부터 하기 때문에 항상 믿음이 깨져있다고 보면 된다.

재밌는 건, 의심이 많은 사람이 한참 의심부터 하다가, 나중에 돼서 상대를 믿게 되는 상황이 있다. 그때는 이미 늦었는데 자기는 상대를 믿는데 상대가 나를 믿지 않는다며 빈번하게 '탓'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용을 읽어본 사람은 느꼈을 텐데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없다.' 해서 깨지지 않는 악순환이라 차라리 가까이하지 않는 게 좋다.

 

 

- 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매달린다.

눈으로 보이는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굉장한 의심을 한다. 해서 준비성이 탄탄해 보일 수도 있다.

아마 자기 자신은, '대비'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에 대한 변명을 철저하게 준비한다. 예를 들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죽을 것을 대비하는 것과도 같다.

만약 이런 사람과 가까운 사이라면... 고생이 많을 것이다.

보듬어 준다고 하여, 이해해준다고 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가 의심을 떨쳐내야 가능하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의심은 적은 반면, '타인에 대한 의심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높다.' 달리 말하면 나에 대해선 관대한데 남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엄격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분마저도 '스스로 인지하기가 어렵다.' 아마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심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 의심병을 고치기 위해선?

쉽지 않지만, 혹여라도 이 글을 보고 깨닫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심하는 습성을 고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어보려 한다.

먼저 '나의 논리는 틀리다.'라는 각인이 필요하다. 의심의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나의 의심엔 이유가 분명하고 근거가 있다.'라고 정의된다.

굉장히 부정적인 자기 암시이다. 의심 많은 사람은, 자존심도 강하고 감정적이다. 이를 무너뜨려야만 의심병을 고칠 수 있다. 해서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의심은 틀린 것이라는 걸 매번 되뇌어야 한다.

왜 틀린지에 대해 이유를 붙이지 말고 무조건 틀리다고 받아들여라.

다음으로 '하나만 봐라.' 사고를 바꿔야만 한다. 1번 이상을 생각하지 말고 딱 한 번만 생각해야 한다. 여러 가지가 한 번에 보이면 중요한 한 가지만 바라보라.

사물에 대해, 행동에 대해, 말에 대해 1번 이상 생각하지 마라. 듣고 보고 끝내라는 것이다. 그 이상 생각을 해선 안된다. 그 자체를 즐기고 받아들이고 보내줘라.

세 번째로 얘기해줄 것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남에게 관대해져라.' 겉으로만 관대 해지라는 게 아니다. '마음속으로도 관대하게 대하라.'

겉으로만 관대한 척하는 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마음속으로도 관대함을 가져라. 사실 이 부분은 '자신에겐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해야 하는 것인데 의심이 많은 사람은 분명 '반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만 남에게 관대했고 겉으로만 자신에게 엄격했지, 속마음은 결국 모든 뜻은 '내뜻대로 흘러갔을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내 뜻은, '병들어있다.' 그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진정으로 나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져라. 그것만으로도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허술해져라.' 계약이나 이런 중요한 문건에서 허술해지라는 게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허술해지라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내 험담을 했을 거야",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그냥 넘겨라. 의심하고 열을 내봐야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괜히 쓸데없는 곳에 내 감정 소모할 필요 없다며 자신을 달래줘라.

또한, 사람을 대할 때도 나도 허술하게 대해라. 나도 별 신경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해라. 그러면 남이 나한테 좀 짜증 나게 해도, 넘어가 줄 수 있다. '나도 그러니까.'

이는 실제로 그랬다는 게 아니라 의심이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뉘앙스를 표현한 것이다. 짜증날만 한 일이 아닌데도 짜증을 유발하는 게 바로 의심이다.

스스로가 의심이 많은지 어떤지는, 스스로가 알고 있을 것이다. 위의 내용들은 인정하지 않더라도, 내가 어떤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의심이란 게 정녕 필요한 것인지, 쓸데없는 의심이 많았던 것은 아닌지, 꼭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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