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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영어 가사 English lyrics of K-pop 그들을 위한 게 아닌데 오해하는 이유와 영어로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가(칼럼)

에세이essay

by 힘들때전화해 2023. 3. 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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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해외 사람들과 해외 케이팝 팬들은 '영어로 부르는 케이팝'을 원하고 있다. 이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여전히 해외는 영어로 된 노래가 아니면 듣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러 이유들이 있으나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것이기 때문에 따로 풀어말하진 않겠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케이팝 팬 조차도 케이팝 그룹들이 영어로 노래를 하면 훨씬 더 좋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하는 해외 사람들이 제법 많다.

많은 예시들이 있으나 이 또한 다 넘기고 대표적으로 사실상 서비스곡이었던 BTS의 영어 노래들,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한국의 대표 케이팝 아이돌들도 100% 영어로 된 노래들을 발매했었다. 그리고 수상도 하였다.

한글로 된 노래의 작품성이 더 뛰어나더라도 영어로만 부르는 노래의 가산점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일련의 예시로 'XG'가 있다. 해외 리액터들은 처음에 갸우뚱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들에 반응을 하는데 "이거 영어야?... 오!... 영어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반응을 많이 보인다.

그들이 잠재적으로 원했던 것.

케이팝이면서 '완전히 영어로 된 노래'. 그것이 BTS, 블랙핑크, 트와이스 만이 아니라(이 그룹들에게는 더 많이 원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그룹들에서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즉, 케이팝+영어노래는 서구권의 엄청난 '선입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 케이팝 관련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케이팝=힙합, R&B라는 것'도 있다. 이것 자체도 선입견이다. 한국은 힙합과 알앤비를 최고로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케이팝의 모든 근본은 힙합, 알앤비라 생각하는 해외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결국은 원하고 있던 것이 '케이팝+영어 노래'인 것이다. 자신들은 노래만 좋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선입견을 말하는 셈이다.

 

 

근데 시대적으로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서구권 사람들은 평생을 '영어 노래를 들어왔다.' 영어 노래는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대단한 작품들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굳이 다른 언어의 노래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다른 언어의 노래 듣는 거 되려 귀찮다. 그냥 영어권 노래 들으면 된다. 좋은 노래 찾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손쉽게 바로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굳이 다른 언어의 노래들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렇게 거대한 장벽이 세워져있던 것이다. 그래서 되려 영어권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개방적인 것 같아도 문화적으로는 되려 개방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되려 많다. 우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줄곳 그래왔다.

 

 

그 단단한 장벽을 잠깐 들어간게 아니라 아예 비집고 들어가서 완전하진 않아도 허물어버린 것이 바로 '케이팝(K-POP)'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케이팝을 통해서 동양의 노래들이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

한 두 노래들이 빌보드에 랭크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케이팝이란 장르' 자체가 만들어졌지 않은가. 케이팝은 아시아권에 있어서 '엄청난 통로'이다.

이 통로를 적극 활용한 것이 'XG'이다. 국내 활동을 보자면 상당히 음흉하게 활용했는데 해외에 1차적으로는 실패했지만 2차적으로는 결국 '먹혀들어갔다.'

영어 노래를 하면서 '감성팔이'를 곁들였기 때문이다. 지금 해외에서 화제가 된 XG의 곡들은 해외 사람들에게 있어 '추억회상'을 일으킨다. 옛 감성을 일으키고 직접적으로 과거의 것을 다시 가져왔다고 표현하는 해외 유저들도 매우 많다.

 

 

즉, 해외에서 먹히는 '케이팝' 그리고 영어권 사람들의 선입견을 이용한 '영어 노래' 마지막으로 감성팔이를 위한 '올드 힙합, 알앤비'까지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서구권 대중들'을 향해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갔다.

전에 다른 글에도 남긴 적이 있지만, 이것은 '퇴보'이다. 옛 것을 현 시대의 감각으로 새롭게 창조해 냈다면 모르겠지만 그저 과거의 것을 꺼내어 추억팔이를 하거나 쉽고 단순하게만 만들어 호감을 사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뿐이다. 이것은 진화하는 것을 늦추는 셈이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친숙한 것,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호감이 발생하는 것이 기본적인 심리이다. 만약 그렇게만 흘러갔다면 우리는 다시 원시인이 되는 것이지만 보다시피 인간은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새로운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 속에서 발전을 늦추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이 상황 자체를 해석해 보는 것이다.

 

 

 

해외 유저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도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음악은 음악으로 보기 때문에 편견 없이 듣는다고 하지만, 고질적으로 남아있는 근본적인 음악에 대한 선입견은 고스란히 작용되고 있다.

이것은 제삼자 입장에서 보기엔 매우 흥미로운 상황들이다. 만약 'K-POP'이 세계화되지 않았더라면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해외에서는 이제 케이팝의 과도기가 지나고 세계적인 문화로 자리매김을 했다. 하지만 세계에서는 아직은 케이팝의 역사가 짧다. 이 속에서 마치 우리가 아이돌 1세대를 거쳤던 것처럼 하나둘씩 거쳐가고 있다.

한국에서 '영어 가사'가 섞이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한국 노래에 영어가사가 들어가는 것은,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크게 보면 '표현 방식' 때문이다.

영어로 쓰는 것이 더 어감이 좋을 수도 있고 한글로는 표현하기 껄끄럽거나 애매한 표현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영어로 대체하기도 했고 한글과 영어를 조합해서 언어유희 같은 것으로 많이 쓴다.

 

 

한글은 범용성이 워낙에 좋아서 꼭 영어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언어들과 조합해 사용하기가 좋다. 그래서 한국 노래가 유독 언어유희가 많기도 하다.

물론 그냥 '있어 보이려고' 쓰는 곡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런 마이너한 사람들은 일부이고 제대로 곡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곡의 퀄리티를 높이는데 좋기 때문에 영어 가사를 혼합해서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가사가 있다고 치면 여기서 '모욕감'이란 단어 자체가 상당히 껄끄럽다. 어감도 안 좋고 노래와 어울리지 않게 된다. 이것을 "넌 나의 feeling of insult"라고 바꿔버리면 훨씬 더 어감도 좋고 표현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이다.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이 보기엔 "한국인들은 서양인들을 너무 동경해", "영어로 노래를 하던지, 영어를 넣지 말던지." 이런 식의 반응도 많이 있다.

이러한 것들에 '불만'이 있는 해외 사람들? 적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해를 하지만, 세상에는 알다시피 사고력이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게다가 이것 역시도 시대적으로 아직은, 사고력이 좋고 케이팝을 제대로 알아봤고 이해하더라도 아직은 저 깊은 곳에 박혀있는 선입견은 있을 수 있다. 세대교체라는 게 이래서 정말 중요하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케이팝은 '영어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아니다.'

간혹 서비스곡은 내줄 수 있어도 무조건 영어로 된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케이팝이 아니게 된다.' 케이팝의 큰 요소들 중에 하나는 '한국어'가 있다.

물론 한국어로 부르지 않아도 케이팝은 케이팝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시작이 '한국'이기 때문에 케이팝의 느낌을 더 잘 살리는 것은 결국 '한국어'라는 얘기이다.

단순히 정체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곡이 주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각 언어에 따라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 이 언어의 장벽은 동양인들이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음악적으로 보자면 아무리 곡이 좋아도 결국은 '영어 노래'를 해야만 서구권으로 진출이 가능하다.

근데 그것을 '한국어 노래'가 뚫고 들어가 그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려버렸다. 왜일까? 필자가 알기론 해외 사람들이 한국어 노래를 들을 때 느끼는 것이 상당히 '스웩'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영어 노래는 상당히 '그루브'하다. 이건 영어가 가진 '특장점'이다. 이 영어가 가진 그루브는 서구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잘 통한다.' 그래서 영어 노래들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것이다.

반면 한국어는 아무래도 '딕션'이 아주 중요하다. 이는 한국에서는 이미 엄청나게 중요시되는 것을 넘어서 '기본 중에 기본'일 정도이다. 그게 한국어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1세대 래퍼들의 딕션은 어땠나. '발음이 엄청나게 중요했다.' 플로우가 떨어져도 무조건 '딕션'이었다. 가사 한 글자 한 글자가 정확하게 들리는 랩을 선호했다.

노래는? 아이돌은? 뭐 달랐을 것 같은가? '똑같았다.' 리듬보다도 노래 가사가 제대로 안 들리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가사가 제대로 안들리면 "뭐야 노래 못하네." 바로 저평가해 버릴 정도였다. 그게 바로 한국 노래의 오랜 특징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딕션보다 플로우를 중요시 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한국어의 강점은 딕션이다. 플로우도 챙겨야 하지만, 해외에서도 한국 노래에 대해서 이 딕션에 대한 감명을 분명 많이 받았을 것이다. 정확한 발음과 강하게 내뱉는 발음이 섞이면서 스웩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서구권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저 들리기에 '한국어는 스웩이 넘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사실은 한국어 자체가 표현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해서 해외에선 한국 래퍼들의 빠른 랩에 대해 놀라워한다. "한국은 빠른 래퍼가 너무 많다."라며 아이돌 래퍼 중에 한 명인 "OO이 한국에서 가장 빠른 래퍼일 거야."라고 '아웃사이더'의 존재 자체는 아예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 빠른 랩을 할 줄 아는 래퍼는 '너무 많다.' 아웃사이더 같은 경우는 좀 논외 정도로 빠른 것이지만 말이다.

한국어의 강점이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역시 뭐다? '딕션'까지도 좋다. 이런 한국 랩을 들으면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다. 저렇게 빠르게 랩을 하는데 언어는 몰라도 발음을 보면 딱딱 딱딱 맞아 들어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건 랩만이 아니라 '보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한국어 노래의 강점이고 그것이 해외에 먹혀들어가게 된 큰 이유 중에 하나인데 한국어 노래가 아니라 영어 노래를 한다... 뭐 영어권에서 이슈가 되거나 활동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이다.'

 

 

 

해외진출? 케이팝이 해외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방탄소년단'의 '쩔어, 불타오르네, 피땀눈물, fake love'가? '블랙핑크'의 '불장난, 휘파람, 붐바야, 뚜두뚜두' 등등 이런 곡들이?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들을 통해서 케이팝의 퀄리티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지 않은가.

왜 이 노래들이 해외에서 '자발적으로 화제가 되었는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이란 나라 자체가 워낙에 변화가 빠르다. 이 과정 속에서 문제도 많이 생기지만 나은 방향을 찾아내는 것도 많다.

케이팝 종사자들이 결국은 미래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전에는 전혀 믿음이 없었지만 한국이란 나라를 그래도 나름 낀세대로 살아보니, 결국은 좋은 방향으로 가더라.

그래서 케이팝 관련해서는 솔직히 케이팝 종사자들이 어련히 잘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종교도 없는 사람인데 '믿음'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케이팝 관련해선 데이터가 워낙 많고 0세대 부터 다 지켜봐왔기 때문에 믿게 되더라. 내가 믿는 건 신적인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에 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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