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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것은 결국 죄가 되기에 자신으로 인한 가난은 죄이다.

에세이essay

by 힘들때전화해 2022.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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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보나 궁극적으로 보나 '가난은 죄이다.' 물론 벗어날 수 없는 강제적인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타인으로 인한 가난을 말하는 것이다. 좀더 쉽게 예시를 들어 나의 빚이 아니라 가족의 빚 때문에 가난한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외의 내 자신으로 인한 가난은 '절대적으로 죄'이다. 가난은 죄일까? 라는 물음에 답이 되는 것이다.

모든 악재의 원흉이 무엇일까? 악한 사람들 때문일까? 악한 사람들은 지천에 널려있다. 재수없으면 악한 사람들에게 걸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악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바로 '가난'이다.

 

 

- 사람에겐 '급'이 있다.

애써 좋은 말로 포장하며 외면하지만, 이는 현실이고 이 현실을 받아들인 후 벗어났을 때 "사람에게 급을 나눠선 안돼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급이 나뉘어지지 않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을 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왜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없을까?' 이건 틀린 말이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으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처럼 내가 능력있으면 내 주변에도 능력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다 끼리끼리이다.

 

 

- 왜냐면 '그렇게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직장만 봐도 얼추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안좋은 직장에는 당연히 '안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이는 매우 당연하며 과학적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악재들이 가능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가난'이다.

가난은 모든 악재의 원흉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은 죄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힘들고 경제적으로 힘에 부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 '밥벌이'를 하며 산다.

밥벌이는 충분하지만, 이것저것 생겨나는 일들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해지는 것이자 이는 가난과는 다르게 '욕심'에 따른 것이라 가난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 즉, 가난한 자는 절대 다수가 아니라 '소수'이다.

대한민국은 불가항력적으로 가난해지는 나라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자신으로 인해' 가난해지도록 되어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으로 인한 것은 위에서 설명했으니 더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말하자면 자신이 가난하게 사는 것을 나라 때문이라 말하는자는 말 그대로 '변명'에 지나지 않다. 자신의 치부를 나라에 전가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일하면 돈은 벌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런 구조가 안되는 나라에 태어났다면 나라탓을 하는 것이 정당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그렇지가 못하다.

 

 

위의 소제목을 곱씹어보자. 과연 이 나라에 서민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 과반수인가? 어쩔 수 없는 강제적인 가난을 겪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의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과연 절대 다수이냔 말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소수'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런 말을 한다. '평범한 절대 다수가 잘사는 나라가 되길' 그 '평범한'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가난'이다.

너무나도 쉽게 가난한 것은 '죄'라는 걸 이미 우리는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불쌍히 여긴다. 이것 자체가 '위선'이다.

사실은 가난한 자들을 보며 혀를 차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안타깝게 여기며 자신의 뭉클한 기분과 저 사람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감을 즐기고 있다.

해서 '가난은 죄인 것이다.'

가난하게 산다고 인생을 못사는 것일까?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무엇인가. 당신은 잘 살고 있다고 100% 자신하며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각기 다른 기질을 타고났으며 제각기 다른 인생을 살 뿐이다.

가난? 가난한 인생이 뭐 어때서. 그런 인생도 있고 저런 인생도 있는 것이다.

 

 

-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

그 누구도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인간의 삶 자체에 정답이란 없기 때문이다. '가난'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통용되는 느낌이 있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해가 안될 수도 있지만, '가난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 누구도 이 사람에게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다며 지적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누군가가 이해가 안된다며, 철이 없다며 지적질을 하면 기분이 어떤가. 분명 좋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다.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없다. 자신의 나태함으로 인해 가난하게 되었다면 그 또한 받아들이라. 그래야 가난이란 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고 가난은 '나로 인해 오는 것'이란 걸 깨닳을 수 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깨닫지 못한다면 가난은 당신의 슬로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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